자가격리, 사회적 거리두기, 그리고 록다운이 일상적 언어가 되었다. 영국은 지난 해 국가 봉쇄가 조금씩 완화되면서 문화기관들이 재개관을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 늘어만 가는 바이러스 감염자에 휴관과 재개관을 반복하고 있다. 현재 영국은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하는 보리스 존슨 (Boris Johnson) 총리의 발표 함께 2차 록다운에 들어갔다 변종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방역 단계를 최고로 올린 상태이다. 1차 국가봉쇄와는 사뭇 다른 방안을 제시 하였지만 격리와 고립 그리고 통제는 사람들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다. 수 천개의 영국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재개관을 위해 고군분투 하였지만 장기화된 국가봉쇄와 머지않아 찾아온 2차 록다운으로 재개관을 하지 못한 곳이 다수이다. 영국의 문화기관들은 현재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언제 휴관 혹은 재개관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내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 영국 정부는 지난 2020년 7월, 15억 7천만 파운드 (약 2조 3천 억 원)를 문화예술계에 지원할 예정이며 이는 영국의 예술 분야가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도록 그리고 현금 유동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음과 같은 정책 패키지를 제안한 바이다. 예술분야 전체 (음악, 연극, 무용, 시각 예술, 문학, 미술, 거리 예술)를 아우르는 지원 정책으로 실은 많은 예술분야에서 이례적인 정부지원 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정과 안도’ 의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정부가 영국사회에서 예술분야에 대한 중요성을 그리고 예술분야에 정말 필요한 부분들에 대한 그 동안의 논의를 들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들뜬 목소리들도 많았다.
이번 지원 정책의 패키지는
- 11억 5천만 파운드 (약 1조 7000억원) 영국 문화단체 지원, 2억 7천만 파운드 (약 4000억원)의 대출과 8억 8천만 파운드 (약 1억 3000억원) 의 보조금으로 구성.
- 영국의 국가 문화 기관과 영국 문화유산에 대한 1억 파운드 (약 1,500억원) 의 목표 지원.
- 문화 인프라 건설과 영국의 문화유산 건설 사업을 재개하기 위한 1억 2천만 파운드 (약 1, 780억원) 지원.
- 위임된 행정부를 위한 추가 자금으로 스코틀랜드의 경우 9,700만 파운드 (약 1,400억원), 웨일스의 경우 5900만 파운드 (약 872억원), 북아일랜드의 경우 3300만 파운드 (약 488억원)지원.
이외에도 올해 초 록다운 시행과 함께 고용 유지 계획을 발표한 바이다. 이는 정부가 기업의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면서 휴직이나 휴가를 보낼 경우 월 임금의 80%까지, 최대 2천 500 파운드 (370만원)를 현금으로 부담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고용 유지 계획은 2021년 3월까지 진행 예정이다.
구조 조정
하지만 정부 지원 정책의 이면에 록다운 발표는 ‘끔직한 재앙’ 과도 같다고 문화기관들은 얘기한다. 또한 방역 단계에 따른 차별화된 지시는 ‘아무런 근거도 논리도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정부의 지원 패키지 너머에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휴관 조치는 영국의 많은 문화 기관들을 더욱 위태로운 재정 상태에 빠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적 손실과 압박을 감당하기 위한 내부 구조 조정은 피할 수 없는 문제 되었으며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예술계 일자리 감소에 대한 ‘쓰나미’가 커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8월, 런던 중심에 위치한 사우스뱅크센터 (South Bank Centre) 복합문화예술공간은 400여명의 직원에게 해고 및 휴직을 제안한 바이다. 이어 테이트 (Tate) 는 런던, 리버플, 세인트 아이브스의 출판사, 갤러리 숍, 카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을 포함한 313여개의 직원 해고 공지를 내린 바 이다. 전체 직원 수인 640명 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의 직원을 해고 하면서 이는 예상했던 중복 인원보다 크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결정임을 알린 테이트 관장, 마리아 발사우 (Maria Balshaw)는, 라디오에서 갤러리 방문객 수가 50 % 감소할 것으로 예상할 뿐만 아니라 이는 한동안 계속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어쩔 수 없는 결과임을 밝힌 바이다. 또한 방문객들의 전시장 내 활동 범위가 한정 지이어지면서 카페와 가게를 열지 못하니 이에 따른 거래 사업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견이다. 테이트 관계자는 록다운이 완화되면서 어렵게 재개관을 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면서 수용력과 수익은 75 %나 감소하여 상당한 손실을 계속 보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에 맞서, 테이트 노동조합 (Tate Enterprises) 직원들은 이러한 감원조치는 흑인과 소수민족 직원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출하며 100명이상의 노동자들이 지난 8월 중순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정부가 테이트에게 7백만 파운드 규모의 구제 금융을 지원한 바에 대하여 적어도 10%가 일자리를 구하는데 쓰일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또한 지난 9월 영국왕립미술관 (Royal Academy of Art) 은 중복 배치되었던 150명의 직원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는 미술관 직원의 40 %에 해당하는 숫자로 예산 삭감에 대한 문제를 피할 수 없기에 내려진 조치라고 한다. 미술관을 개관한 이래 정부의 지원을 일체 받지 않고, 오로지 기부 및 후원 그리고 미술관 관람을 통한 수입으로 운영을 해왔던 만큼 영국왕립미술관에게 이번 팬데믹은 다른 기관들 못지않게 쉽지 않은 시간을 주고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이 정부의 지원만큼이나 민간단체들을 통한 후원 및 지원을 많이 받는 영국의 박물관/미술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의 순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팬대믹으로 예술 분야가 후원 순위에서 밀리면서 정부의 지원 외에는 기댈 곳이 없어진 것이 현실이다. 또한 구조조정의 문제가 영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기관들에서 이뤄진 조치인 만큼 실망감과 불안감이 크다. 문화예술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근로자가 많은 관계로 위의 정책에서 제외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부의 긴급 지원 정책의 반가움 이면에 너무 늦지 않았나 ‘Too little too late’,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DCMS (Digital, Culture, Media & Sport)위원회 줄리안 나이트 (Julian Knight) 위원장은, 이번과 같은 정부의 지원과 개입을 환영하지만 현재 3배 이상의 사람들이 휴직 중에 있으며 이는 전례 없는 조직들의 존폐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을 막지 못할 수 도 있음을 밝힌 바이다. 이어 일자리 지원 계획은 불충분 할 것이며 휴관조치에 대한 재 고려를 부탁한다고 하였다.
기회
코로나 쇼크가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새로운 시도의 움직임도 보인다. 지난 2차 록다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록다운의 아쉬움을 표현 하듯 런던 웨스트엔드 전역의 26개의 갤러리들이 새로운 규제를 앞두고 갤러리를 밤 10시까지 개관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WestEndGalleryNight) 이는 방문객들에게 마지막으로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협업 작업으로 진행 되었다. 늦은 밤 오프닝을 진행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시대에 우리 갤러리들이 필요로 하는 일종의 협업이 이뤄진 것’ 이라 하였으며, 정부 규정을 준수하면서 갤러리들은 원거리적인 방식으로 가능하다면 일대일 회의를 추진할 것이며 컬렉터들과 사전예약을 통해 갤러리를 운영 할 계획이라 하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상태 및 부족한 직원과 관람객의 수는 비록 문화기관들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게 하였지만 이를 기회 삼아 미술관 재정비에 들어간 곳들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립초상화갤러리 (National Portrait Gallery) 는 2021년까지 재개관을 연장하였으며, 하우스 오브 일러스트레이션 (House of Illustrations)은 새 부지 준비를 위해 재개관을 2022년으로 미뤘다. 이외에도 온라인 플랫폼이 다양하게 확장되었다는 점도 지켜 볼만한 기대효과이다.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록다운은 단순히 내 외부 활동을 제한했을 뿐 아니라 창의적인 활동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교류를 하는데 있어서 많은 양향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기관들이 잦은 휴관으로 큰 타격 입은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박물관/미술관이 어려운 시기에 지역사회를 지원하고 문화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어려움을 같이 극복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기관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오래 전부터 박물관/미술관들이 더 이상 특정 계층 혹은 사람들만을 위한 기관이 아닌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특히나 다 인종 국가로서 소외계층의 사회적 배제를 완충하기 위한 포용적 박물관/미술관이 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한 공간이자 필요한 공간임을 주장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번 바이러스는 박물관/ 미술관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전시장 내 관람객들의 모든 활동을 제한하면서 관람 날짜 및 시간을 정해야 할뿐 만 아니라 전시 동선까지 정해져 있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관람을 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영국은 브렉시트 (Brexit) 전환 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규칙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코로나 백신이 상용화되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계획해오던 모든 일에 노란 신호가 켜진 것만 같은 상황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주변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로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제한 및 통제가 이뤄진 만큼 새로운 방안을 생각해 내야했다는 점에서 재정비의 시간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월간미술 (2021.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