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o you feel about this?’
How do you feel about this?
번쩍이는 갤러리 한복판에 작은 집으로 켜켜이 쌓은 바벨탑이 놓였다. 2015년, 영국 출신 작가 Barnaby Barford, 1977-) 는 주택의 위치로 자본주의 사회의 위계를 그려냈다. 이후 그는 금방이라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를 덮칠 것만 같은 사과들을 설치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로부터 뉴턴, 그리고 세잔과 마그리트가 곁에 두고 관찰했던 사과는 욕망의 상징으로 반짝거린다. 이렇게 바퍼드가 산업 도자기, 유리섬유, HD form 등으로 제작한 작품들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사회에 산재한 탐욕, 우리를 압도하는 불안감을 파헤친다. 최근 그는 록다운 상황에서 ‘진실’, ‘희망’, ‘거짓’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속해온 단어들이 개인과 공동체의 삶 속에서 지니는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지금, 작가의 사고는 어떤 경로를 향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영국이 국가를 봉쇄 한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빠르게 흘러가던 것들을 강제로 멈춰 버리게 하면서 일상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는 국가 봉쇄, 글로벌 팬데믹, 그리고 패닉 바잉 등 코로나 19 평소에 듣지 못하던 생소한 단어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 사이 인간의 집단 이기심과 차별 (Black Lives Matters, Anti-Asian) 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우리는 앞으로 이와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대한 숙제를 안고 있다.
버나비 바퍼드 (1977- )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우리 사회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다면 왜 행복하지 않은가’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로얄 칼리지 오브 아트 (Royal College of Art) 에서 세라믹 전공으로 석사를 졸업한 작가는, 인류를 둘러싸고 있는 두려움이나 이기심과 같은 본성을 비판적으로 보거나 풍자적으로 다루면서 그 이름을 알렸다. 그가 2015년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 선보인 <Tower of Babel> 은 3000개의 작은 집을 쌓아 올린, 6m 에 달하는 탑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사회의 소비주의를 비판적으로 보여주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바퍼드의 오랜 관심사이자 작업의 주요 주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인데, 그의 고민은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주제들로 변한다. 다소 무거워 보일 수 있는 주제들 (힘, 진실, 거짓)은 그의 시선에서 미화 되곤 한다. ‘Humour is vital to me’, 작업 과정에서 유머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는 작품 속 사회풍자적인 요소들을 통해 긴장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경계를 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는 사회를 비꼬기 보다는 역설적으로 강조하여 사람들이 그 주제에 참여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최근 작가는 ‘사과’를 통해 불행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도록 변해버린 우리 사회를 바라봤다. 전시 <More, More, More> 에서, 그는 사과나무에 ‘사랑’ ‘거짓’ ‘희망’ ‘혼돈’ 등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이 적혀있는 사과를 매달아 관객들이 직접 사과를 따면서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모호한 단어로 우리를 압도하는 욕망을 지시하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지금, 필자는 작가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박물관, 미술관 및 갤러리들이 기약 없는 휴관에 들어갔다. 코로나 19 팬데믹 기간 어떻게 작업을 진행해 왔는가?
코로나 사태 때문에 해오던 것들에 많은 제약이 따랐지만, 이 시간은 그 만큼 도전의 시간이기도 했다. 이전 해부터 시작한 드로잉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시도를 할 즈음 첫 번째 록다운이 시작되었다. 당시 7살, 9살이던 내 아이들과 홈 스쿨링을 시작하며 같이 작업을 했고, 그 시간은 굉장히 즐거웠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다 오랜만에 한 작업에만 몰두 할 수 있었던 점도 한몫했다. 마치 내 집이 레지던스로 바뀐 것 같은 느낌에 매우 만족스럽게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실 벽을 흰 도화지로 만들어 아이들과 같이 그려나갔는데, 전시를 계획하고 시작한 작업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업 초반에는 나와 아이들이 초반에는 신나 있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봉쇄조치가 길어진 만큼 아이들도 흥미를 잃었고, 나 또한 작업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다. 현재는 종이가 아닌 아이패드에 드로잉을 하며 새로운 작업 과정을 시도 중이다.
작품에서 흥미로운 단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힘’, ‘사회’, ‘희망’, ‘진실’, ‘거짓’, 단어들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줄 수 있는가?
사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작년이 꽤나 흥미로운 시기이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고민들은 어느 세대나 했을 것이라 믿으며 단어들의 흐름을 살펴보는데 초점을 두었다. 그 중 행복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행복은 불안과 연결이 될 수 있으며 부족함에서 오는 불안은 결국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게 한다. 더 큰 재미, 더 많은 친구, 더 깊은 사랑 그리고 더 큰 부 등 무엇을 ‘더’ 원하는가 싶어 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니 정말 많은 것들에 의해 우리가 압도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영국이 브렉시트 문제로 시끄러울 때 인간이 이렇게 쉽게 정치적인 힘에 의해 조정 당 할 수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알다시피 사회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사람들을 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단어들이 지속적으로 미디어나 정치를 통해 반복되었을 때, 단어들은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희망, 변화, 선택 등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단어들에 대한 드로잉을 시작했다. 다른 크기와 색으로 종이에 수 천 번을 적어 나아간 글자들은 이후 글자가 아닌 새로운 선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그 단어들의 의미도 애매모호하게 변했다.
작가에게 애매모호함은 단어의 주어진 의미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조각, 설치 뿐만 아니라 드로잉과 영상 작업 등 작업의 변화가 느껴진다. 여기에 대한 설명과, 과거와 현재의 작품들은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말해달라.
작업 환경 변화에 따라 나에게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졸업을 하고 처음 부엌 식탁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 당시에 부엌 식탁에서 할 수 있는 작업은 작은 작업들이었다. 이후 작업실이 조금씩 커지면서 큰 작업을 하게 되었다. 다른 한 가지로는 기술의 발달이라고 본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같은 문제를 다르게 바라본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작업이 조금씩 변하지만 드로잉 작업을 했던 것처럼 만들어가면서 연결 고리가 생겨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Tower of Babel> 작업에서 내가 느낀 것은, 우리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거다. 소비사회의 위계질서와 물질적인 문제는 우리의 자존감을 확인하려는 충동을 보여준다. 만약에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면 우리는 더는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 아닌가. 나는 우리가 잘못된 것들에 가치를 두고 그 가치에 의해서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건 아닌지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과나무 작업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모든 작품에 대한 연결 점을 고려하며 작업하지는 않는다. 자유로운 생각으로 작업 하는 편이다.
작업의 주 재료인 흙은 작품의 아이디어와 기술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갖는가?
‘Thinking through making’, 무언가를 위해 만들기보다는 만들면서 생각한다. 만드는 공정 자체가 나에게는 생각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흙을 다른 맥락으로 밀어 넣어 재료에 대한 기대와 오래된 산업 공정의 능력에 도전하곤 한다. 최근 드로잉 작업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드로잉은 즉흥성을 갖고 있고 세라믹 작업은 계획과 순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래서 그 다음의 과정을 고려 한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다른 재료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계가 없어진 것 같다. 이러한 반복적 작업을 통해 내가 나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고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관람객과의 소통은 본인의 작업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유머를 통해서든, 그 행위를 통해서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나 현대 미술은 관람객을 수동적으로 인식 할 때가 많다. <Tower of Babel> 의 작은 집 3000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탑의 가장 윗부분에 있는 집들이 우리가 말하는 좋은 동네에 위치한 작은 가게들이라면, 탑의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그와 정반대 동네에 위치한 가게들이다. 이러한 집들이 박물관에서 판매가 되면서 관람객은 역설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관람객은 작품을 사는 듯 하지만 그 집의 상징적 의미는 관람객 개인의 해석에 달려있다.
다음에 꼭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지금 우리 사회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들인 ‘사랑’과 ‘거짓’에 대해 더 작업하고 싶다. 그 외에 다른 가치에 대한 탐구로서 다른 문화와 함께 작업을 해보고 싶다.
한국 독자들,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멈춰 서서 생각 할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에 대해 묻고 싶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Is this a good thing or bad thing? How do you feel about this?
공포와 불안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나부터 먼저 (me first)!’를 외쳤고, 작가는 그러한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탐구해왔다.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며 살지만 지금 이 사회는 우리에게 특정한 문맥에서 문제점을 보도록 강요한다. 비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바나비 바퍼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우리의 사회를 너무 미화해서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작업이라고 하는 일을 단정해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 정확한 단어를 찾아 설명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을 통해 시각적으로 든, 정신적으로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 진다는 것은 너무 빠르거나 복잡하게 엉켜버린 사회 속에서 우리가 조금이나마 어깨에 힘을 뺄 수 있게 해준다. 바퍼드는 본질을 따라가되, 새로운 것에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하였다.
월간미술 (2021. 4)